토네이도 캐시 재판, 개발자 책임론 중대 기로- 고의성 입증이 최대 쟁점

혁신과 처벌의 갈림길에 선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그 위로 떨어지는 판사의 망치를 묘사한 레트로 스타일 삽화

핵심 요약

1. 암호화폐 믹서 ‘토네이도 캐시’ 공동창업자 로만 스톰의 재판에서 변호인단은 검찰이 ‘범죄 지원 의도’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무죄를 요청했다.
2.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개발자가 자신의 소프트웨어가 악용될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방치한 ‘과실’과, 범죄를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한 ‘고의’를 구분하는 것이다.
3. 판결 결과에 따라 향후 프라이버시 기술을 개발하는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법적 책임 범위가 결정될 수 있어 업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자신의 코드가 범죄에 악용되었을 때 어디까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역사적인 재판이 미국 법정에서 진행 중이다. 암호화폐 믹싱 서비스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의 공동창업자 로만 스톰(Roman Storm) 측이 “검찰이 범죄자를 도우려는 의도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며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면서, 개발자의 ‘고의성’ 여부가 재판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과실’과 ‘고의’ 사이의 법적 공방

지난 9월 30일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제출된 법률 문서에 따르면, 스톰의 변호인단은 검찰의 주장이 ‘과실 이론(negligence theory)’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스톰이 악의적인 행위자들이 토네이도 캐시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이것이 범죄를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고의(willfulness)’와는 명백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스톰이 악의적 행위자를 돕기 위해 행동했다는 확증적인 증거가 부족하자, 정부는 피고인이 오용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고의성 입증 책임을 다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고의성 기준에 반하는 주장이며 법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즉, 단순히 결과를 방치한 것과 특정 결과를 의도하고 행동한 것은 법적으로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프라이버시 기술 개발의 미래를 좌우할 판결

토네이도 캐시는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 기술을 활용해 거래 프라이버시를 강화하는 탈중앙화 프로토콜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자산을 통제하면서 온체인 추적을 끊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기술이 북한 해커와 연계된 자금 등 수십억 달러의 불법 자금 세탁에 사용되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미 사법당국은 스톰을 체포하고, 또 다른 공동창업자 로만 세메노프를 특별지정제재대상(SDN) 명단에 올렸다. 이 사건은 암호화폐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블록체인 협회와 같은 단체들은 “스톰은 사용자의 자금을 통제하거나 보관하지 않는 비수탁형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을 뿐”이라며, 이번 유죄 판결이 프라이버시 기술 개발자들에게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타임스탬프의 시각

이번 재판은 ‘코드의 중립성’이라는 해묵은 논쟁을 법정으로 가져왔다. 칼을 만든 대장장이는 그 칼이 요리에 쓰일지, 범죄에 쓰일지 통제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오픈소스 개발자가 만든 프라이버시 도구의 모든 사용 사례를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법원이 ‘악용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방치한 것’만으로 형사 책임을 묻는다면, 이는 사실상 모든 강력한 기술 개발에 ‘잠재적 범죄 방조’라는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이는 혁신을 위축시키고 개발자들을 자기검열의 늪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개발자의 유무죄를 가리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창조’의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사이퍼펑크 정신의 시험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커뮤니티는 프라이버시와 암호학 기술을 옹호하는 ‘사이퍼펑크(cypherpunks)’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로만 스톰의 재판은 이러한 기술적 이상이 현실의 법체계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법원이 검찰의 손을 들어준다면, 앞으로 프라이버시 강화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모든 개발자들은 잠재적인 법적 리스크를 안게 된다. 이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위축시키는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를 낳을 수 있다. 반대로 변호인단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개발자들은 법적 부담 없이 기술의 중립성을 지키며 연구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될 것이다. 업계 전체가 이번 재판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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