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1. 홍콩이 스테이블코인 규제 샌드박스를 출범하며 아시아 금융 허브 도약을 노리고 있다.
2. 그러나 중국 본토가 자국 국영기업 및 금융기관의 홍콩 내 암호화폐 사업 참여에 제동을 걸었다.
3. 홍콩의 개방 정책과 중국의 통제 강화가 충돌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홍콩 시장 진출 전략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아시아의 디지털 자산 허브를 꿈꾸는 홍콩의 야심 찬 계획이 중국 본토의 보이지 않는 규제 장벽에 부딪혔다. 홍콩이 글로벌 기준에 맞춘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도입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지만, 정작 중국 정부가 자국 국영기업과 금융기관들의 관련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홍콩의 정책 방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의 야심과 中 본토의 견제
홍콩 통화청(HKMA)은 지난 8월 1일부터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라이선스 제도를 포함한 새로운 규제 체제를 시행했다. HSBC나 세계 최대 은행인 중국공상은행(ICBC) 등 77개에 달하는 기관이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취득에 관심을 표명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현지 매체 차이신(Caixin)의 최근 보도는 이러한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본토의 인터넷 대기업, 국영기업, 금융기관 등 홍콩에 진출한 중국계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및 암호화폐 관련 활동에서 철수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홍콩의 여러 국영기업과 중국계 은행 지점들은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경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익명의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차이신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신청을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는 홍콩의 개방적인 디지털 자산 정책과, 자본 통제 및 금융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중국 본토의 정책 기조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 소식통은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이제 막 시작 단계이며 미래 방향이 불확실하다”며 “서둘러 참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해, 중국 당국의 신중한, 혹은 부정적인 입장을 시사했다.
엇갈리는 정책 신호, 혼란 속의 시장
문제는 중국 본토의 통제 강화 움직임이 홍콩 금융 당국의 규제 완화 흐름과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차이신의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홍콩 통화청은 은행이 암호화폐를 취급할 때 적용되는 자기자본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은행들이 규제를 준수하는 스테이블코인을 더 쉽게 수용하고,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홍콩 당국은 규제를 최적화하여 금융 혁신을 장려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홍콩은 문을 활짝 열고 글로벌 플레이어들을 유치하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 본토 기업들은 뒷걸음질 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과거 차이나상업은행 자회사가 홍콩에 기관용 암호화폐 거래소를 열고, 징둥닷컴이나 앤트 인터내셔널 같은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인을 등록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글로벌 금융 허브의 미래는 어디로
이번 사태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 아래 홍콩이 누려온 금융 자율성이 디지털 자산 시대에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홍콩은 서구의 자본과 중국의 시장을 잇는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아시아 금융 허브로 성장해왔다.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새로운 금융 기술을 통해 그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 홍콩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중국 본토의 입김이 강해질수록 홍콩의 독자적인 정책 실험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국영기업과 대형 은행들의 참여 없이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이는 홍콩 시장 진출을 고려하던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상당한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홍콩은 중국의 금융 안정이라는 대의와 글로벌 디지털 자산 허브라는 미래 비전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번 중국 국영기업 철수 압박이 일시적인 속도 조절일지, 아니면 홍콩의 디지털 자산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의 신호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