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플레이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 탈중앙화 거래소(DEX) 전쟁이 거버넌스 토큰과 이자 농사(Yield Farming)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경쟁이었다면, 지금은 속도, 레버리지, 그리고 무엇보다 정교하게 설계된 ‘에어드랍’을 무기로 싸우는 새로운 전장에 돌입했습니다.
최근 몇 달간 벌어진 일들을 종합해보니 한 가지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과거 유니스왑이 시장을 평정한 이후, 이제 경쟁의 무대는 현물 시장을 넘어 무기한 선물(Perpetuals) 시장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공식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포인트-투-에어드랍(points-to-airdrop)’ 모델입니다. 이는 단순히 유동성을 유치하는 것을 넘어, 거래량 자체를 폭발적으로 생성하고 시장의 내러티브를 장악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기존 강자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와 그 아성에 도전하는 아스터(Aster), 라이터(Lighter)라는 두 신흥 경쟁자가 있습니다. 이들의 대결은 단순한 시장 점유율 싸움이 아닙니다. 유기적인 성장과 기술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모델과, 막대한 인센티브로 시장을 단숨에 장악하려는 모델 간의 근본적인 철학 대결에 가깝습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에어드랍이라는 막대한 보상 파티가 끝나도 사용자는 플랫폼에 남을 것인가?
신호 1: 기준점이 된 챔피언, 하이퍼리퀴드
새로운 경쟁을 이해하려면 먼저 현재 시장의 기준을 세운 하이퍼리퀴드를 살펴봐야 합니다. 자체 고성능 블록체인 인프라 위에 구축된 하이퍼리퀴드는 2025년 중반 월간 거래량 3,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깊은 유동성과 빠른 체결 속도는 전문 트레이더와 기관들을 끌어들이는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유기적 성장을 이끈 보상 프로그램
하이퍼리퀴드의 성공 배경에도 포인트 기반 보상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후발주자들의 전략과는 결이 다릅니다. 하이퍼리퀴드의 포인트 시스템은 초기 참여자와 활성 사용자들에게 기여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총 94,000개 주소에 토큰 공급량의 27.5%가 분배되었고, 이 에어드랍의 가치는 현재 약 70억~8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시장에 ‘성공적인 에어드랍’의 청사진을 제시한 사건이었습니다.
굳건한 시장 지배력
현재 하이퍼리퀴드의 미결제 약정(Open Interest)은 132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플랫폼에 실제 자금이 얼마나 많이 예치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입니다. 유통 시가총액이 약 152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견고한 기반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비질 랩스(Vigil Labs)의 CTO인 캘더 화이트(Calder White)는 “우리 시스템은 하이퍼리퀴드가 여전히 가장 유기적인 자금 흐름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하이퍼리퀴드가 단순한 투기적 거래를 넘어, 실제 수요에 기반한 시장임을 시사합니다.
신호 2: 내러티브와 레버리지로 무장한 도전자, 아스터
하이퍼리퀴드의 독주 체제에 가장 먼저 균열을 낸 것은 BNB 스마트 체인 기반의 아스터입니다. 아스터의 성장은 그야말로 내러티브 주도형 성장의 교과서와 같습니다. 바이낸스 공동창업자 ‘CZ’가 프로젝트의 고문으로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시장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고, ‘바이낸스의 DEX’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1,000배 레버리지와 공격적인 에어드랍
아스터는 최대 1,000배 레버리지라는 파격적인 기능과 함께 토큰화된 주식 거래를 도입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하지만 성장의 진짜 엔진은 막대한 에어드랍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즌 2에서만 약 6억 달러 상당의 아스터 토큰 3억 2,000만 개가 사용자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이 강력한 인센티브는 폭발적인 거래량으로 이어졌고, 한때 24시간 수수료 수입이 2,000만 달러를 넘어서며 디파이 전체에서 최상위권 수익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만들어진 거래량’에 대한 의문
다만, 아스터의 성장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남깁니다. 캘더 화이트는 “아스터의 성장은 매우 내러티브 중심적이며, 트레이더들이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자본을 재활용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에어드랍 보상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위적인 거래, 즉 ‘워시 트레이딩(Wash Trading)’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보상 시즌이 종료된 후에도 이 막대한 거래량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신호 3: 기술과 독점성으로 승부하는 다크호스, 라이터
경쟁 구도에 뛰어든 또 다른 강력한 주자는 이더리움 롤업 기반의 라이터입니다. 라이터는 기술적 야심이 돋보이는 플랫폼입니다. 맞춤형 이더리움 레이어-2와 영지식 회로를 통해 5밀리초 미만의 매칭 지연 시간을 구현, 중앙화 거래소(CEX)에 버금가는 속도를 목표로 합니다.
제로 수수료와 배타적 수익 모델
라이터는 개인 사용자에게는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 ‘제로 수수료’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동시에, ‘라이터 유동성 풀(LLP)’이라는 독특한 수익 모델을 제시합니다. 현재 4억 달러 이상의 예치금에 대해 약 60%의 연간수익률(APY)을 제공하는 이 풀은, 사용자의 포인트 잔액에 따라 참여 한도가 결정됩니다. 더 활동적인 트레이더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이 배타적 구조는 강력한 참여 동기를 부여합니다.
에어드랍 기대감과 장외 시장의 형성
라이터는 아직 자체 토큰을 출시하지 않았지만, 시장의 기대감은 이미 뜨겁습니다. 포인트가 개당 39달러에서 60달러 이상에 거래되는 활발한 장외(OTC) 시장이 형성될 정도입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라이터의 현재 미결제 약정은 약 21억 달러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토큰 출시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커뮤니티에 할당될 에어드랍 규모는 최대 7억 5,000만 달러에서 11억 달러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는 하이퍼리퀴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토큰 분배가 될 잠재력을 가집니다.
인프라와 인센티브, 최후의 승자는 누구인가
DEX 유동성 전쟁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이퍼리퀴드는 견고한 인프라와 유기적인 기관 수요를 바탕으로 방어에 나서고 있고, 아스터와 라이터는 ‘포인트-투-에어드랍’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시장의 역학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들의 대결은 인센티브가 시장을 얼마나 멀리, 그리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실험입니다.
결국 시장은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유동성과 거래량이 지속 가능한 해자를 구축할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탄탄한 기술과 유기적 수요를 가진 플랫폼이 살아남을지 말입니다. 캘더 화이트의 말처럼, “진짜 시험은 에어드랍이라는 음악이 멈췄을 때, 트레이더들이 계속 춤을 출 것인지에 달려있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제 그 음악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