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암호화폐 산업의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암호화폐 정책 기조와 명확해지는 규제 환경에 힘입어, 해외로 나갔던 암호화폐 기업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거나 국내 사업을 확장하는 ‘리쇼어링(Reshoring)’ 현상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폴 앳킨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최근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 연설에서 “해외로 떠났던 암호화폐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역시 “미국은 암호화폐의 황금기에 진입했다”며 기업들에게 “이곳에서 회사를 시작하고, 프로토콜을 출시하며, 인력을 고용하라”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러한 고위급 인사들의 발언은 미국이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여러 글로벌 암호화폐 기업들이 이러한 정책 변화에 반응하며 미국 시장으로의 복귀 또는 확장을 발표하고 있다. 불가리아 기반의 암호화폐 대출 및 수익 플랫폼인 넥소(Nexo)는 규제 명확성 개선을 이유로 수년간의 공백 끝에 지난 4월 미국 시장 복귀를 선언했다. 네덜란드 기반 파생상품 거래소 데리비트(Deribit) 또한 미국 시장 진출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런던 기반의 알고리즘 트레이딩 회사 윈터뮤트(Wintermute)는 뉴욕에 사무실을 개설했다. 세이셸에 등록된 중앙화 거래소 OKX는 5억 달러 규모의 미국 규제 당국과의 합의 이후 샌호세에 새로운 본사를 설립하며 미국 사업을 공식적으로 재개했다.
채굴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기반의 채굴 회사 비트메인(Bitmain)은 2026년 초까지 미국 내 첫 ASIC 생산 시설을 개설할 계획이며, 텍사스 또는 플로리다에 새로운 본사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비트메인, 캐나안(Canaan), 마이크로BT(MicroBT) 등 글로벌 비트코인 ASIC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보도와 맥을 같이 한다.
기존 미국 기반 기업들도 국내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크라켄(Kraken)은 와이오밍주의 친(親)암호화폐 정책을 이유로 글로벌 본사를 샤이엔으로 이전했으며, 문페이(MoonPay)는 뉴욕시에 새로운 본사를 열고 미국 50개 주에서 운영 라이선스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게이트(Gate)가 미국 고객을 대상으로 현물 거래 서비스를 시작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게이트는 미국의 규제 명확성 개선을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꼽았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고려할 때 더욱 주목할 만하다.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에 따르면,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미국은 7,500억 달러 이상의 암호화폐 가치를 수령하며 영국이나 러시아 등 다른 주요 국가들을 압도했다. 시큐리티닷오알지(Security.org) 조사에서는 2025년 기준 미국 성인의 28%인 약 6,500만 명이 암호화폐를 소유하고 있으며, 암호화폐를 소유하지 않은 미국인의 14%가 2025년에 구매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기존 보유자의 67%는 추가 구매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미국은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과 고위급 정치적 지원을 통해 암호화폐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업 유치를 넘어, 미국의 금융 혁신과 기술 리더십을 강화하는 중요한 전략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향후 미국이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며 암호화폐 산업의 ‘황금기’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