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암호화폐 ‘허브’ 야심에도 규제 속도 거북이 걸음… 산업계 불만 증폭

영국 의회 건물을 배경으로 암호화폐 심볼을 짊어진 느린 달팽이가 다른 국가의 규제를 상징하는 빠른 자동차들과 대비되는 레트로 삽화.

영국 정부가 과거 ‘암호화폐 허브’가 되겠다는 약속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자산 산업에 대한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에 있어 여전히 신중하고 더딘 속도를 보여 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다른 주요국들이 속속 명확한 규제안을 내놓는 것과 대비되며, 영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2년 당시 총리였던 리시 수낙(Rishi Sunak)은 영국을 블록체인 비즈니스에 친화적인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관련 법률 개정 노력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암호화폐 산업은 여전히 원하는 수준의 규제 명확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톰 스필러(Tom Spiller) 로젠블랫 로(Rosenblatt Law) 파트너는 코인텔레그래프에 “노동당 정부는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정부의 핵심 과제 내에 명확한 초점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신호들도 포착된다. 영국은 미국과 달리 암호화폐 규제가 여야의 주요 쟁점이 되지는 않았지만, 점진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리폼당(Reform)은 올해 초 비트코인(BTC) 캠페인 기부를 받겠다고 발표했고, 노동당 또한 사용자 보호를 강조하면서도 산업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핀테크 기업 테세락트(Tesseract)의 그룹 CEO 제임스 해리스(James Harris)는 “톤은 대체로 신중함과 소비자 보호에서 실용주의로 천천히 바뀌고 있다”며 “이는 새로운 정부에 의해 역전되지 않아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25년 4월 재무부(HM Treasury) 협의와 금융감독청(FCA)의 CP25/14 문서가 ‘금융 서비스 및 시장법(FSMA)’에 따라 암호화폐를 합법적인 자산 클래스로 취급하려는 전환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재무부 협의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스테이킹 등 암호화폐 활동을 허용하는 FSMA 변경안을 제안했으며, FCA 문서는 스테이블코인 및 암호화폐 보관에 대한 일련의 규칙을 제시했다. 또한, 디지털 자산을 재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재산(디지털 자산 등) 법안(The Property (Digital Assets, etc.) Bill)’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어, 통과될 경우 “주요 돌파구”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의 속도에 대한 우려가 크다. 스필러 변호사는 “진행 속도, 특히 미국과 같은 다른 관할권의 발전과 비교했을 때 우려가 있다”며 “이러한 느린 모멘텀은 인재와 자본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도록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해리스 CEO 역시 영국이 여전히 “글로벌 경쟁자들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며, EU의 MiCA(Markets in Crypto-Assets) 규제 프레임워크, UAE의 폭넓은 암호화폐 수용, 그리고 미국의 의미 있는 입법 진행 상황을 언급했다.

크립토UK(CryptoUK)와 같은 산업 단체들은 의원, 규제 당국, 언론 등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법률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스테이블코인 인정, 기업들이 다른 사업과 동일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한 은행 정책, 그리고 광고 규정 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다. 스필러 변호사는 영국 정부가 범죄 수익으로 압류한 70억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 자산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개선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암호화폐 산업은 자금세탁방지(AML) 요건 및 트래블 룰(Travel Rule) 준수에 협력하고 있지만, 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현행 전통 금융 상품 관련 법률로는 쉽게 분류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적인 장애물이다. 전문가들은 더욱 미묘하고 목적에 맞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GENIUS Act’가 통과된 것처럼, 명확하고 강력한 규제 프레임워크는 궁극적으로 불법 행위자를 퇴출시키고 규제 준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소규모 기업을 정리하며, 대형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놓고 경쟁하는 ‘통합’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 영국의 느린 행보는 이러한 변화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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