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금융권에 ‘원화(KRW) 스테이블코인’ 개발 광풍이 불고 있다. 암호화폐 친화적인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주요 은행들이 앞다퉈 관련 상표권을 출원하자, 해당 은행들의 주가가 단기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규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시장의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부양되는 것을 두고, 실체 없는 ‘스테이블코인 버블’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데이터에 따르면 카카오뱅크,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들이 6월 말에 집중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출원한 사실이 확인됐다.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6월 23일 상표권 출원 사실이 알려진 직후 주가가 19.3%나 폭등했으며, KB금융그룹과 기업은행 역시 각각 13.38%, 10.1%의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6월 4일 출범한 이재명 대통령의 신정부가 내건 암호화폐 관련 공약과 무관하지 않다.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캠프는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개발 지원을 포함한 친(親)암호화폐 정책을 약속한 바 있으며, 이는 금융권의 스테이블코인 사업 진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은행들로서는 미래 먹거리 선점과 정부 정책 부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상표권 출원 경쟁에 뛰어들 유인이 충분했던 셈이다. 투자자들 역시 은행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며 주식 매수에 나섰고, 이는 단기적인 주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암호화폐 리서치 회사 ‘Four Pillars’의 수석 연구원 ‘100y’는 이러한 현상을 ‘스테이블코인 버블’이라고 규정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X)를 통해 “한국은 현재 명확한 규제안이 없는 상태에서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열풍에 편승해 주가 상승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 자산 증명 방식, 규제 관할 등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한 규제 공백 상태에서 은행들이 상표권 출원만으로 사업의 청사진이나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없이 시장의 기대감에만 편승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문제는 이러한 ‘묻지마’식 기대감이 향후 심각한 시장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정부의 규제 방향이 은행들의 예상과 다르게 설정되거나, 스테이블코인 사업의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부풀려졌던 주가는 순식간에 꺼질 수 있다. 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피해로 돌아갈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명확한 규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사업 진출을 독려하는 것을 넘어, 발행사의 자격 요건, 100% 자산 담보 원칙, 투명한 회계 감사 의무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한국 금융 시장에서 벌어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열풍은 규제라는 단단한 땅 없이 기대감이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성과 같다. 은행들의 주가 급등은 혁신에 대한 긍정적 신호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규제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이 ‘버블’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적 설계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