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이 자사의 디지털 라지캡 펀드(Digital Large-Cap Fund)를 상장지수펀드(ETF)로 전환하는 승인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획득하며, 암호화폐 투자 상품 시장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이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이어, 여러 알트코인까지 포함하는 다중 암호화폐 펀드가 ETF 형태로 제도권에 편입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이번 승인은 그레이스케일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자, 암호화폐 투자 환경이 더욱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그레이스케일의 디지털 라지캡 펀드는 코인데스크 파이브 인덱스(CoinDesk Five Index)에 포함된 시가총액 기준 상위 5개 암호화폐로 구성된다. 이 펀드의 가중치는 비트코인(BTC)이 약 80.2%로 가장 높고, 이더리움(ETH)이 11.3%, 솔라나(SOL)가 약 2.7%, XRP가 4.8% 이상, 카르다노(ADA)가 0.81%를 차지한다. 그레이스케일은 오랫동안 투자자들이 직접 암호화폐를 보유하는 기술적 어려움 없이 디지털 자산에 노출될 수 있는 선구적인 투자 수단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기존의 그레이스케일 암호화폐 신탁(trust) 상품은 락업 기간과 현물 상환(in-kind redemption)의 부재로 인해 순자산가치(NAV) 대비 프리미엄 또는 할인율이 발생하는 차익 거래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레이스케일은 2022년 6월부터 비트코인 신탁을 ETF로 전환하기 위해 SEC에 신청했지만 거부당하자 법정 싸움을 벌였고, 2023년 8월 미국 법원은 SEC의 거부 결정이 “자의적이고 변덕스럽다”고 판결하며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승소는 미국 내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신탁은 비트코인 현물 ETF로 전환되어 시장에 거래되고 있다.
이번 디지털 라지캡 펀드의 ETF 전환 승인은 이러한 차익 거래 기회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펀드의 투자 목표를 “펀드가 보유한 디지털 자산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으로 명확히 하면서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승인은 특히 솔라나, XRP, 카르다노와 같은 주요 알트코인에 대한 ETF 출시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미 솔라나, XRP, 라이트코인(LTC) ETF 승인 가능성을 95%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그레이스케일의 행보는 암호화폐 투자 시장이 투기적 성격에서 벗어나 보다 제도화되고 규제된 금융 상품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는 더 많은 기관 투자자들과 일반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며, 시장의 유동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레이스케일의 ETF 전환 성공은 암호화폐 업계에서 ‘신탁 시대의 종말’과 ‘ETF 시대의 도래’를 상징한다. 이는 암호화폐가 전통 금융 시스템에 더욱 깊이 통합되는 중요한 단계이며, 규제 명확성이 확보되면서 새로운 자본이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향후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다양한 암호화폐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ETF 상품 개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전반적인 암호화폐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