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 금융(DeFi)의 상징적 존재인 유니스왑 랩스(Uniswap Labs)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지난 4년간 회사의 성장을 이끌며 ‘기업화’를 주도한 메리-캐서린 레이더(Mary-Catherine Lader)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사임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녀의 퇴장은 단순한 고위 임원의 인사이동을 넘어, 개발자 중심의 스타트업에서 체계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해 온 유니스왑의 1막이 끝나고 새로운 챕터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레이더 사장은 회사에 자문 역할로 남아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예정이다. 그녀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니스왑에서의 4년은 놀라운 모험이었다”며, “암호화폐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유니스왑 측은 공식적으로 그녀의 공헌에 감사를 표하며 “그녀가 쌓아 올린 기반 위에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으나, 아직 후임자는 지명되지 않은 상태다.
레이더의 사임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녀가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녀는 월가의 심장부인 블랙록(BlackRock)에서 전무이사(Managing Director)이자 지속가능성 투자 플랫폼 ‘알라딘’의 글로벌 책임자로 재직하다 2021년 돌연 유니스왑에 합류한 인물이다. 이는 당시 전통 금융(TradFi)의 핵심 인재가 탈중앙화 금융(DeFi) 생태계로 이동하는 ‘대전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그녀가 유니스왑에 합류한 시점은 프로토콜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개발자 중심의 스타트업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던 때였다. 레이더는 COO로서 재무, 법률, 인사, 마케팅, 정책, 고객 지원 등 기업 운영에 필수적인 내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의 지휘 아래 유니스왑은 2022년 10월, 16억 6천만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1억 6,500만 달러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유니스왑이 단순한 프로토콜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기업’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했다.
또한, 그녀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법적 다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4년 4월 웰스 노티스(Wells Notice)를 받으며 시작된 SEC의 조사는 올해 2월, 별다른 법적 조치 없이 종결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가 구축한 법률 및 정책 대응 시스템이 큰 힘이 되었다는 평가다. 즉, 그녀는 혼돈의 DeFi 세계에 ‘질서’와 ‘구조’를 이식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레이더 이후의 유니스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쏠리고 있다. 그녀의 사임은 유니스왑이 ‘기업화 1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창립자인 헤이든 아담스가 이끄는 유니스왑이 다시 초기의 ‘탈중앙화’ 정신과 개발자 중심 문화로 회귀할 것인지, 아니면 레이더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더욱 고도화된 기업 구조를 추구할 것인지 기로에 놓여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니스왑이 더 이상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30일간 거래량이 730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거대해진 플랫폼은 이제 코인베이스나 바이낸스와 같은 중앙화 거래소와 직접 경쟁하며, 동시에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제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기 리더십은 탈중앙화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될 것이다. 메리-캐서린 레이더의 퇴장은 한 개인의 이직을 넘어, DeFi 생태계 전체가 겪고 있는 성장통과 정체성 고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혁신과 무질서 속에서 태동한 DeFi가 주류 금융 시스템과 공존하고 경쟁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 진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니스왑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