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암호화폐로 ‘군사용품’ 조달 정황… EU 제재망, ‘이중용도 물자’ 유통 경로 정조준

암호화폐 심볼과 이중용도 물자를 상징하는 상자가 교환되는 모습을 담은 레트로 스타일 삽화로, 암호화폐를 이용한 불법 물자 조달을 암시한다.

유럽연합(EU)이 친러시아 허위 정보 유포 및 제재 회피에 연루된 개인과 단체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한 가운데, 암호화폐가 단순한 자금 세탁을 넘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이중용도 물자(dual-use goods)’ 조달에 사용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암호화폐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루블 연동 스테이블코인과 암호화폐 거래소, 제재의 핵심 타깃으로

이번 EU 제재 명단에는 몰도바의 도주한 과두정치인 일란 쇼르(Ilan Shor)가 설립한 ‘A7 OOO’라는 기업이 포함되었다. 이 기업은 몰도바의 선거 개입 자금 조달 창구로 지목되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루블에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코인 ‘A7A5’ 프로젝트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체인 분석 기업 TRM 랩스(TRM Labs)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스테이블코인은 러시아의 제재 대상 거래소였던 가란텍스(Garantex)의 후신으로 여겨지는 암호화폐 거래소 ‘그리넥스(Grinex)’에서 주요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즉, ‘A7 OOO’라는 기업과 ‘A7A5’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그리넥스’ 거래소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러시아 관련 자금의 세탁 및 이동 통로 역할을 해온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경로가 단순한 자금 이동을 넘어 실물 경제, 특히 전쟁 물자와 연결될 가능성이다. TRM 랩스는 A7 기업이 당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국경 간 무역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그리넥스와 A7A5 스테이블코인이 “중앙아시아를 통해 중국에서 러시아로 이중용도 물자를 수입하는 데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중용도 물자’란 무엇인가?

‘이중용도 물자’란 민간용과 군사용으로 모두 사용될 수 있는 품목을 의미한다. 소스에서 언급된 예시에 따르면, 민간 컴퓨터에 사용되는 프로세서는 미사일 유도 시스템에 전용될 수 있으며, 의류 제작에 쓰이는 면화는 화약의 원료로 가공될 수 있다. 이러한 물품들은 잠재적인 군사적 전용 가능성 때문에 수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 이러한 통제 품목들을 암호화폐를 통해 우회적으로 조달하고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추적이 어려운 암호화폐의 특성을 이용해 결제를 진행하고, 제재망에 포착되지 않는 유통 경로를 통해 첨단 기술이나 군수물자 부품을 확보한다면, 이는 국제 제재의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분쟁을 장기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TRM 랩스는 이번 EU의 제재가 “자금 흐름에서부터 서사 전파에 이르기까지, 영향력 공작의 전체 생애주기를 교란하려는 더 광범위한 전략적 전환을 예고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규제 당국이 암호화폐를 이용한 금융 범죄를 넘어, 국가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실물 거래까지 추적하고 차단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향후 암호화폐와 관련된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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