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각국의 ‘골든 비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엘살바도르가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 네이티브(crypto-native)’ 시민권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자유 비자(Freedom Visa)’로 명명된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비트코인(BTC)이나 테더(USDT)를 직접적인 투자 자산으로 받아들여 기존의 법정화폐 중심 이민 시스템의 틀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개인·환전 없는 ‘다이렉트’ 암호화폐 투자
기존의 시민권 또는 영주권 투자 프로그램(Citizenship-by-Investment, CBI)은 대부분 암호화폐를 ‘간접적인’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바누아투나 도미니카 연방, 포르투갈 같은 국가들은 신청자가 허가된 중개 에이전트에게 암호화폐를 지불하면, 에이전트가 이를 법정화폐로 환전하여 정부에 기부금이나 투자금 형태로 납부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결국 최종 단계에서는 법정화폐가 필수적인 반쪽짜리 암호화폐 친화 정책이었다. 그러나 엘살바도르의 ‘자유 비자’는 이 과정에서 법정화폐로의 환전이라는 관문을 완전히 제거했다. 소스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Tether)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구축되었다. 신청자는 100만 달러에 해당하는 비트코인 또는 USDT를 직접 정부가 승인한 이니셔티브에 투자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테더가 암호화폐-법정화폐 간 인프라를 처리하여 정부가 디지털 자산 형태로 직접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신청 절차 역시 암호화폐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투자자는 999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이나 USDT를 환불 불가한 신청 보증금으로 먼저 납부하고, 승인 후 나머지 금액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는 투자금의 원천부터 최종 집행까지 모든 과정이 암호화폐 생태계 안에서 완결되는, 진정한 의미의 첫 ‘암호화폐 네이티브’ 이민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국가 경제 전략과 결합된 파격 실험
엘살바도르의 이러한 파격적인 행보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적 실험의 연장선에 있다. 연간 1,000명의 투자자로 제한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유치된 자금은 국가의 교육, 기술, 인프라 등 국가 발전에 직접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이는 단순히 부유층의 자금을 유치하는 것을 넘어, 국가의 ‘비트코인 경제’를 강화하고 글로벌 암호화폐 커뮤니티와의 유대를 공고히 하려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자유 비자’는 신속한 처리 기간(약 6주 내 초기 승인), 거주 의무 면제, 가족 단위 신청 가능 등의 혜택을 제공하며 암호화폐 자산가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과 암호화폐를 둘러싼 규제 불확실성은 여전히 잠재적 리스크로 남아있다. 그러나 엘살바도르의 실험은 암호화폐가 단순한 투기 자산을 넘어, 한 국가의 이민 정책과 경제 개발 전략의 핵심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향후 다른 국가들이 엘살바도르의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유사한 ‘암호화폐 네이티브’ 프로그램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