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세일러의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촉발한 ‘비트코인 기업 재무 전략’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Digital Gold)’으로 간주하고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대차대조표에 편입하던 초기 모델을 넘어, 이제는 ‘디지털 인프라’로서의 이더리움(ETH)의 가치에 주목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투자 자산의 다변화를 넘어,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한 달간 주요 기업들의 이더리움 매집 행보는 이러한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펀드스트랫의 톰 리가 회장을 맡고 있는 비트마인(BitMine)은 약 4억 8천만 달러에 달하는 163,142 ETH 보유 사실을 공개했다.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조셉 루빈이 설립한 샤프링크 게이밍(SharpLink Gaming)은 무려 28만 ETH 이상을 보유하며 기업 ETH 보유량 선두에 나섰다.
이 외에도 비트디지털(Bit Digital)이 10만 ETH 이상을, 블록체인 기술 컨센서스 솔루션(BTCS)이 6,240만 달러 자금 조달 후 29,122 ETH로 보유량을 늘렸으며, 게임스퀘어(GameSquare) 역시 1억 달러 규모의 ETH 재무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의 행보는 비트코인을 축적하는 기업들과는 다른 결을 보인다. 금융 앱 ‘NoOnes’의 CEO 레이 유세프는 코인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오랫동안 디지털 금의 표준이라는 칭호를 유지해왔지만, 이제 이더리움이 토큰화된 금융을 주도하는 네트워크와 대차대조표를 일치시키려는 기관들의 마음을 점차 사로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지적처럼, 이 기업들은 단순히 가치 저장을 넘어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효용성’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이더리움을 선택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스테이킹 수익(Staking Yield)’이다. 비트코인과 달리 지분증명(PoS) 방식의 이더리움은 보유 자산을 네트워크에 예치(스테이킹)함으로써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기업 재무 담당자들에게 수동적인 자산 보유를 넘어,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자산’으로서의 매력을 제공한다.
둘째, ‘프로그래밍 가능성(Programmability)’과 압도적인 생태계 지배력이다. 레이 유세프는 “이더리움은 기술 지분과 디지털 통화의 하이브리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대부분의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 토큰화(RWA) 프로토콜은 이더리움 또는 이더리움 호환 체인(레이어2) 위에서 구축된다. RWA.xyz 데이터에 따르면, 이더리움은 RWA 시장에서 315개 프로젝트와 77억 6천만 달러 규모로 58.1%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이더리움의 네트워크 효과를 자사의 미래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 상대적으로 ‘규제 친화적인 로드맵’이다. 비록 규제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더리움 생태계는 규제 당국과의 소통과 규범 준수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이는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들에게 비트코인과는 다른 차원의 안정감을 제공한다. 물론, 이더리움 재무 전략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 유세프가 지적했듯, 스테이킹 수익에 대한 회계 및 세무 처리 기준, 커스터디 표준 등 명확한 가이드라인 부재는 여전히 대기업들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더리움 기업 재무’ 트렌드는 블록체인 기술의 기업 채택이 ‘가치 저장’ 단계를 지나 ‘인프라 활용’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이는 마치 기업들이 과거 인터넷 초창기에 단순히 웹사이트를 보유하는 것을 넘어,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핵심 인프라를 내재화하기 시작한 과정과 유사하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금’을 넘어 ‘디지털 경제의 철로’를 소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